평론
평론
1. 얼굴 그 창조 프로젝트의 집합코드
신흥우의 개인전에 부쳐, 윤우학 미술 평론가
작가 신흥우의 작업은 인간의 얼굴이 갖는 기묘하고 복합적인 존재 방식의 구조를 그만의 작업적 문맥으로 전환시켜 신의 창조가 갖는 신비의 코드를 우리에게 수신시키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신흥우의 얼굴 작업은 우리에게 새삼스러운 흥미와 함께 인가의 육체와 정신이라는 결코 만만치 않은 비밀의 관계를 푸는 실마리로서 새로운 의미를 한편에 던지고 있다.
실리콘 주사로부터 즉흥적으로 뿌려진 채 얼굴이 갖는 섬세한 표정은 물론 주름살마저도 삭제하여 던져지는 그의 얼굴들은, 한 사람 한 사람 개인의 내면상으로 보다는 오히려 조물주의 창조 프로젝트로부터 쉴 사이 없이 쏟아져 나오는 일련번호를 달리하는 하나의 보편성으로서, 무심하게 채취되고 있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사람 만드는 과정 동안에 천차만별의 기억들이 머릿속에 과거로부터 흘러 들어와 느린 그때 만났던 하나하나 각인된다.
그때 만났던 사람들의 얼굴의 기억들이 몇 가락의 선으로 형상화되어 토해진다......” 아마도 작가는 사람 얼굴이 갖는 보편성과 더불어 인종, 민족, 성별, 나이, 혈맥 등에 따라 유사해지는 유형,
그리고 그 속에서 다양하게 꾸려지는 개성이야말로 복잡하게 짝이 없는 상관관계를 오히려 즉물적이고 즉흥적인 행위 속에서 대비시켜 조물주의 창조이념을 상징화 시키려 했는지도 모른다.
“...피카소의 그림 속에 나오는 일그러진 얼굴이건 두 살 때 그렸던 내 딸의 그림의 그림 속 인물이건 그야말로 범 코스모스적인 누구나 아무 얼굴이나 순간순간 떠오르는 대로 그려낸다.
아무것고 아닐 수도, 무엇이 될 수도 있는 내 작업은 그런 서로 모르는 사람들끼리 뒤섞여 만나는 하나의 순간(운명,인연)이다.”
작가의 최근 작업 속에는 서로 다른 많은 얼굴들이 만나 또 다른 하나의 얼굴을 형성하는 기묘한 집합관계가 다양한 색체의 혼합과정과 더불어 독특한 의미구조를 만들어 내고 있다.
개념의 동어반복과 같은 일련의 의미구조가 바로 그것이며 이 구조는 결국 세계로 향한 작가의 내성적이고 사색적인 눈길이 깊고 무한한 창조프로젝트의 신비 속으로 뛰어든 채 인간에게 주어지는 숙명의 과제들을 풀어 나가려는 작가 자신의 끈기 있는 노력과 시도의 한 단편을 상징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시쉬포스의 신화처럼 끊임없는 열정과 에너지 그리고 고통을 작가에게 요구하게 될 것이다.
Fren
Visage, Code intégal du projet de création
Pour l’honneur de l’exposition individuelle de SHIN Heung-Woo
Dans les tableax de SHIN, on peut voir son intention de nous montrer le code merveilleux, intégral de la création de Dieu, en exprimant la structure comlexe de l’existence humaine par son travail artistigue.
Normalement le caractère d’un homme se présente à son visage. Donc le visage est le seul moyen de comprendre son monde intérieure.
C’est pourquoi le visage est l’objet central de description, Quand nous voulons exprimer le caractère de quequ’un. Le portrait, donc, a le domaine propre, malqré l’invention de la photographie,
par la raison qu’il cherche exprimer le monde mental et intérieur d’homme par l’invention de la photographie, par la raison qu’il cherche exprimer le monde mental et intérieur d’homme par i’expression intérieursde visage.
Plutôtavecun regret sur ce que mettre l’accent sur le mental empêche de la description équilibre sur l’homme, l’approche postmoderne qui insist la description phénomène de la description équillibre sur l’homme,l’approche postmoderne qui insiste la description phénomène de visage a attiré paradoxalement la sympathie de tous plus facilement. Des visage dans les tableaux de SHIN, dans un même sens,
attire nos intérêts et encore nous faire trouver la résolution du probléme non-résoluble et en secret entre le mental et le corps. les visages dans ses tableaux, rejetées spontanément par l’injection de silicone, nous semblent même insignifiants.
C’est-àdire, les visages sans ride, sans des figures sensibles, nous semblent même insignifiants. comme une généralié que existe dans le projet de création de Dieu.
“des souvenirs divers me reviennent de la passé à ma tête, pendant que je crée des visages et ils y sont imprimés comme une scène de ciéma, Ces visage se figurent avec des lignes dans mon tableau....” (cahier d’artiste)
Peur-être SHIN, artste peintre, il me semble nous symboliser l’intertion de Dieu de création, en decrivant le monde complexe spontanément : la coexistence de la généralité qui revient des visagesd;homme et la personnalité qui revient des races, de l’âge, du gendre différents, dans le monde.
“des visages écrasés dans un tableau de Picasso ou des visages dans un tabloeu de ma filli de 2ans, je dessine n’importe quel visage. C’est le pancosmos. Ça peut être rien, ou encore quelque chose. C’est un moment de rencontrer entre des visage inconnus. C’est le destin.” (cahier d’artiste)
Dans ses tableaux, on peut concevoir l’intérgration des visage tout différents par le mélang des couleurs, gui fait naître la stucturew particulière de sens. comme la
répétiton du même mot. Ça signifie l’effort soutenu et l’essai de cet artiste, de résoudre des problémes de destin avec l’énergie ininterrompu et avec la grand passion, comme le myth de Sisiphe.
Yun Huhak, critique artistique
평론
2. 신흥우의 물질회화와 유쾌한 그로테스크
김성호 미술 평론가
삼인칭 복수와 일인칭 복수의 경계 : 신흥우의 사람들
‘신흥우가 그리는 사람들’이란 그의 인생 속에서 스치고 지나간 수많은 특수적 인물들이 서로 녹아들고 스며들면서 중화되거나 복합된 ‘익명의 보편적 인물들’ 이미지로 나타난다.
오랜 파리 유학(1991-2003) 시절 동안, 만났던 많은 사람들의 얼굴들만큼이나, 그의 그림에 나타난 사람들은 인종과 성별, 나이, 외형별 모양새는 제각각의 다양하지만, 그들은 그 어떤 특수자만으로 지칭되지 않는다. 그들은 보편과 특수를 오간다. 그것은 전체와 획일성의 그물 사이에서 찾아내는 알록달록한 사람들의 개별 이야기이자 모든 이들의 이야기가 된다. 신흥우의 사람 그리기라는 직업은 복잡다기한 정체성을 살고 있는 ‘보편자 현대인의 포괄적 정체성을 찾기’이자 동시에 '특수자 현대인의 세세한 일기 쓰기’ 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신흥우가 그려내는 사람들의 이미지는 대상을 전제로 한 재현(representation)이 결코 아니다. 그의 심상 속에 자유롭게 유영하는 이미지들을 그저 현실계로 투영시켜내고 고착화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그것은 다분한 표현(expression)이라 할 것이다.
작가 신흥우는 마치 생명을 만들어내는 조물주처럼 자신의 드로잉에 뼈와 살을 만들어 입힌다. 그가 만드는 사람들은 때로는 색소폰이나 첼로를 다룰줄 아는 음악전문인과 같은 인물들로 구체화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그렇지만 대개 그가 빚은 피조물들은 대부분 익명의 보편적 인물들이다. 즉 그것들, 그들, 혹은 그녀들이라는 3인칭 복수들은 통칭시킨다. 그(녀, 것)들은 도시의 빌딩 숲을 헤치고 하늘을 붕붕 날아다니거나 한바탕 댄스파티가 벌어지는 장에서 연신 하늘에 손가락을 찌르면서 발바닥을 비빈다. 그(녀, 것)들은 바로 우리이기도 하다, 즉 3인칭 복수들은 결국 1인칭 복수에 다름 아니다.
신흥우의 작품 세계에서, 이러한 일인칭과 삼인칭이 복수의 형태로 만나 지점을 우리는 그의 얼굴 이미지를 통해서 보다 쉽게 이해해낼 수 있다. 즉 그의 작품에 나타난 얼굴들은 즉 그(녀, 것)들의 얼굴이자 바로 우리의 얼굴인 것이다,
얼굴이란 원래 우리의 시각(vision)에 근거한 지각(perception)작용에 있어서 너와 나의 정체성을 즉각적으로 구별시키는 기능을 한다.
그런데 우리를 흥미롭게 하는 것은 그가 만드는 것은 그가 만드는 얼굴들은 모두 인물의 뒷통수처럼 표현되고 있다는 것이다.어떤 인물은 코가 유난히 크고 어떤 이는 눈이 몰려 있고 어떤 이는 턱이 길면서 서로서로 차별화된 독특한 이미지들을 만들어내는데에 왜 이러한 차별화된 이미지들을 인물들의 뒷통수처럼 표현되고 있다고 우리가 단정 할 수 있는 것일까?
지나친 과장이나 개별체적 강조점은 외려 특수성을 갉아먹고 상쇄시켜내기 때문이다. 캐리커쳐(caricature)가 실존인물의 개별체성과 특수성을 잘 드러내지만 이러한 캐이커쳐들은 한테 모아놓고 볼 경우 그것들은 비슷비슷한 과장들로 서로는 갉아먹고 이나 뒷통수의 이미지들처럼 그 정체성이 모호해지게 된다.
다양한 인물들은 결국 보편성으로 치환되고 우리와 같은 1인칭 복수로 뭉뚱그린 채 드러나게 된다. 마치 개성이 가득하고 유별나게 사람들이 모두 신(神)을 닮았다는 점에서 동일한 것처럼 말이다.
Eng
The border between the third-person plural and the first-person plural
Shin Heung-woo’s people.
‘People Shin Heung-woo depicts’s appear as ‘anonymous general people’s through the fusion, permeation, and combination of numerous figures he met in his life.
They are as diverse in race, sex, age, and outer appearance as those he met in Paris where he studied between 1991 and 2003. They appear universal yet also specific.
The narratives Shin’s people convey are individual and universal as well. Shin’s portrayal of people aims not only to discover ‘universal contemporary humans’ complex identity but also to write a detailed diary of
'specific contemporary humans’. The images of people Shin illustrates are never based on reproductions of objects. His freely floating mental images are reflections onto or a fixation in reality.
As Got creates life, Shin adds bone and flesh to his drawings. Those who he creates are at times musicians playing the cello or saxophone. However, they are mostly anonymous universal figures.
They are usually referred to in the third-person plural: those and they. They (those women, these things) fly through the sky, or dance at a party. They are none other than ‘we’.
The third-person plural is at last same with the first-person plural. We can confirm this fact more easily in the faces of the images Shin portrays. The faces in his work are their faces and simultaneously our faces.
In terms of visual perception, the face functions to immediately distinguish your identity from my identity. In others words, the face is an indicator of one’s identity.
The faces he creates look like the backs of heads, but each face has a distinctive image: a face with a particularly large nose; a face with close set eyes; and a face with a long chin. If so,
why can I say these distinctive images are expressed with the backs of heads? This is why excessive exaggeration and strong emphasis on individuality may decrease distinctiveness. A caricature eloquently represents a figure’s individuality and distinctiveness,
but many caricatures gathered together show blurred identities due to their similar exaggerations and distortions. Diverse figures eventually become universal as if people with distinctive individuality are the same in that they all resemble God.